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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물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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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곡사석천

  • 위치 :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
  • 참고 문헌 : 영일군사, 일월향지
천곡사석천

흥해읍 학천리에 있는 천곡이란 유명한 샘이 있다.

항상 맑은 물이 홍수가 지나거나 가뭄 때에도 일정한 양이 솟아나며, 이물을 마시면 만병을 고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이 피부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던 중 한 신하의 말이 "동해안 천곡령(泉谷嶺) 이라는 고개 아래 효험이 있는 묘한 샘이 솟아나니, 그곳에 목욕을 하시면 대왕님의 병이 완치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한번 시험해 볼 것을 권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왕은 안강, 기계, 신광을 거쳐 흥해 천곡령에 도착하여 천곡에 목욕을 하고 나니, 씻은 듯 피부병이 완치가 되었다고 한다. 여왕은 매우 신기하고 효험이 있는 샘물이라 자장율사(慈藏律師)로 하여금 그 곳 이름을 일명 천곡사(泉谷寺)라고 하였다 한다.

천곡사의 절은 아깝게도 6. 25때 전소되었으나 이 석천만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마르지 않고 아직도 그 맑음을 자랑하고 있다.

 

일월지

  • 위치 :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덕리 59. 60번지(해병부대내)
  • 참고 문헌 : 영일군사, 일월향지
일월지

연오랑세오녀설화

옛날 신라시대로부터 [해달못]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부터 한자식으로 부르게 되어 일월지라 부르고 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못이라하여 천제지 또는 해와 달의 빛이 다시 돌아왔다고 광복지라 불렀다.이못은 동쪽과 서쪽 즉 길이가 약250m, 남쪽과 북쪽의 폭이 약150m로 총면적 약5,000평 정도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157년)에 신라땅 동쪽 일월동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연오랑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였으며, 세오녀는 베를 짜며 금실좋게 살았다고 한다.어느날 연오랑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해초를 따던중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동쪽으로 흘러가 일본의 섬나라에 도착하게 되었으니, 그곳 사람들은 바위를 타고 건너온 사람을 남달리 신비하고 비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연오랑을 왕으로 모셨다. 연오랑이 돌아오지 않음을 크게 슬퍼하던 세오녀는 연오랑을 찾아 헤매다가 연오랑의 신발이 놓인 바위에 오르니 이 바위가 또 다시 움직여 연오랑이 있는 섬나라에 도달하여 왕비가 되었다.

그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갑자기 빛을 잃고 천지가 어두워지니 이에 놀란 아달라왕은 급히 점치게 하니 천지가 어두워진 연유는 연오랑과 세오녀부부가 바다를 건너가고 없어 이땅에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사자(使者)를 불러 섬나라에 건너간 연오랑과 세오녀를 이땅에 다시 불러오도록 명하였던 바 연오랑과 세오녀는 대답하기를 우리는 이미 하늘의 뜻을 쫓아 이곳으로 오게 되어 돌아갈 수 없으니,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 한필을 내어주며 내가 살던 못가에 단을 쌓고 나무가지에 이 비단을 길게 걸고 정성을 모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기이하게 빛을 잃었던 해와 달이 다시 빛을 찾아 신라땅을 환하게 비추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제사를 지내던 못을 일월지라 하여 이 지역을 도기야라 하였으며, 지금도 이 지역을 일월향(日月鄕)이라고 부르고 있다.

 

두호지

  • 위치 : 포항시 북구 두호동
  • 참고 문헌 : 포항시사

옛날 예맥의 어느 왕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장생불사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마침 아첨 잘하는 한 신하가 아뢰었다. 그 신하는 여자음모를 많이 모아 이불과 방석을 만들어 덮고 자기도 하고, 깔기도 하는 등 항상 여자의 음모 위에서 생활하는 것이 장생불사의 묘약이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여 온 나라에 명령을 내려 여자의 음모를 잘라 모으게 하여 방석과 이불을 만들어 깔고 덮고 살았으나 오십이 못되어 죽어버렸다.

아첨꾼들로 득실거리는 이 나라의 신하 가운데 유독 충성스러운 군수가 하나 있었다. 그는 안락군의 군수로서 세상사람들이 존경하여 안락공, 안락태수라고 불렀다. 안락공은 백성등의 비참한 광경을 보다 못해 왕에게 상소도 올리고 직소도 하였으나, 왕은 충직한 신하의 간언을 용납 할 줄 모르고 도리어 크게 노하여 그를 당장 잡아 참형에 처하라 하였다.안락공은 포악한 정치의 재물이 되기보다는 나라 밖으로 망명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가족을 이끌고 밤을 이용하여 일엽편주을 타고 예맥국을 탈출하였다.

그리하여 남으로 내려와 신라 태화현 통야포(지금의 포항시 두호동)에 상륙하였다.그런데,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곳에 오기는 하였으나 살아나갈 방도는 실로 막연하였다. 안락공은 부득이 그 부인과 아들을 통양포 장재집의 식모로 맡겨두고 자신은 속세를 떠나 경주 기림사에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통양포 장재는 안락공이 떠난 후 미인인 부인에게 음탕한 마음을 품고 그 아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먼 곳으로 쫓아 보내고는 부인이 혼자 있는 틈을 노려 자기의 야욕을 채우고자 회유와 협박을 하였다. 하지만 정숙한 부인은 끝내 거절하므로 장재는 어느 날 밤 부인을 죽이고 그 시신을 망연산 대밭 숲속에 버리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십수년이 지난 어느 날 장재의 집 사립문 앞에 스무 살 남짓되어 보이는 젊은 중이 나타나 목탁을 치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면서 시주를 청하였다.

잔악하고 인색한 장재는 뜰 마당에 있는 쇠똥을 가리키면서 시주할 것은 없고 이 쇠똥도 좋다면 하겠다고 말하였다.중은 빙그레 웃으며 쇠똥도 좋으니 시주를 하라며 바랑을 풀었다. 장재는 쇠똥을 가래로 떠서 바랑에 넣어 주었다 그래도 중은 장재 앞에 합장하고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돌아서니 장재를 위시하여 주위의 가복들이 박장대소하며 조소를 퍼부었다. 중은 장재집 사립문을 나와 수십 보를 걸어 나오자 홀연히 일진광풍이 어지럽게 불어닥치더니 천지를 진동하는 뇌성벽력이 장재집 지붕 위에 떨어지면서 그 집이 땅속으로 함몰되기 시작했다.

장재집 사람들이 사람 살리라고 외치는 아우성이 들려오는 것 같더니 장재 집터는 순식간에 못이되고 말았다.젊은 중은 언덕 위에 서서 아무 표정 없이 함몰되어 가는 광경과 장재를 위시하여 전 가족이 죽어가는 아우성과 그 죽음 의 최후의 순간을 지켜보고 합장배례하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만 외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중은 안락공의 아들이었다.안락공은 기림사에서 병을 얻어 죽은 후 그 아들은 어머니의 시신을 버린 곳에 사찰을 건립하여 안락사라 부르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불을 빌하면서 한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장재집이 함몰하여 변한 못을 후세사람들이 "안락지", "장재지", "두호지" 등으로 부르고 있다.지금의 포항시 두호동 동부초등학교 서쪽편에 있는 "새못"이라고 하는 못이 그 유적이라고 한다.

 

금정과광명을 찾은 소경

  • 위치 : 포항시 북구 청하면 서정리
  • 참고 문헌 : 영일군사

풍수서인 성지비결에 의하면 청하면 금정리는 물위에 뜬 바가지 형국이라 하여 "금호"라고 불렀다. 그런데 고려 초 어느 날 한 절름발이 누이와 소경인 오빠가 이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목이 말랐던 남매는 마을 어귀에 있던 샘을 찾았다.누이는 오빠에게 먼저 물을 떠 주고 나서 자신이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는데 번쩍이는 황금 덩어리가 그 속에 있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금 봐라" 라고 소리를 졌다.

이 소리에 놀란 오빠가 눈을 번쩍 떴는데 그만 앞이 환하게 열리며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현감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남매의 우의를 칭찬하고 샘의 이름을 금정(金井)이라고 붙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의 이름도 이에 따라 부르게 되었다.

 

공진거랑과 등대산

  • 위치 : 포항시 북구 기계면 지가리
  • 참고 문헌 : 영일군사

기계면 지가1리 아랫마을과 지가2리 넘마을 사이에는 조그마한 거랑이 있는데 이 거랑을 "공진거랑"이라고 하고 그 왼쪽의 나지막한 야산을 "등대산"이라 한다.조선중기 공진사라는 선비가 벼슬에 뜻이 없어 한양에서 이곳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고 있었다.어느날 경주부윤이 기계에 들렀다가 함께 공부하는 공지사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공진사에게는 착하고 예쁜 무남독녀가 있었는데 이를 본 경주부윤이 사돈맺기를 청하자 공지사는 쾌히 승낙을 하였다. 혼례일 불과 며칠 앞두고 경주부윤은 역모죄를 뒤집어 쓰고 한양으로 압송되어 버렸다 공진사 부부는 거랑을 건너 등대산에 올라가서 경주부윤의 억울함을 천지신명에게 매일 기도하였다.

그 공덕으로 경주부윤은 풀려날 수 있었다. 그후부터 경주부윤의 억울한 죄를 밝히기 위하여 공진사 부부가 매일 건너다닌 개울을 공진거랑, 등불을 밝혔던 산을 등대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샘이 솟아나온 수곡(水谷)

  • 위치 : 포항시 북구 기북면 수곡리
  • 참고 문헌 : 영일군사

기북면 수곡리는 한들 동쪽 산기슭에 있다. 옛날에는 물이 무척 귀하여 해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 일이었다. 그해에도 가뭄이 심하여 기우제를 올리는데 어떤 사람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수맥을 일어 주었다고 한다. "너희들의 정성이 갸륵하여 물을 점지해 주겠노라, 운주산 물줄기를 끌어와야 하니 내가 가르키는 곳에다 우물을 파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꿈에서 가르쳐준 곳에다 우물을 팠다. 과연 그 우물에서는 물이 펑펑 솟아나기 시작하였으며 가뭄을 잊을 수가 있었다.

그후 이 마을을 물어 펑펑 솟아나는 곳이라 하여 수곡으로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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